2018 VISION KYONGAHN CHURCH
"주의 영광과 권능을 세상에 전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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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안교회
    2018-12-09
    교회와 예수님과의 관계로 생각해야 한다. 지난 번 언급했던 지혜와 계시의 성령으로 하나님을 경험할 때에 우리의 영안이 열리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게 된다. 이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두시고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우셨다. 본문 22절에서 ‘만물위에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이야기 한다. 그 머리가 되심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다스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으뜸이 되는 교회는 세상의 법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인이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만물을 발 아래에 둘 것을 23절에서 계속해서 말씀한다. 만물의 머리가 되어야 함으로 하나님 사랑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교회에 주신 축복 바꾸어 말하면 교회되심을 세우는 하나님을 알 필요가 있다. 첫째, 주님께서 교회를 계획하셨다. 생육하고 번상하여 땅에 충만하는 것 그리고 다스림이다. 베드로가 마16:16에서 ‘주는 그리스도’라는 것과 ‘하늘에 계신 아버…
    경안교회
    2018-12-06
    하나님께 집중하면 예수님을 닮게 하신다. 엡4장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다. 본문 8절에서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주어지는 지식과 지혜이다. 잠1:7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혜라고 말씀한다. 본문 9절에 ‘그 뜻의 비밀’이라고 말하는 것은 세상을 운용하는 하나님의 법칙이다. 또한 ‘때가 찬 경륜’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영향력은 배우고 깨달아서 아는 것이다. 본문 10절에서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하늘과 땅의 것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모든 것이 통일 된다고 말한다. 영적인 마음과 시야가 확보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기도하며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단2:22-23에서는 느부갓네살의 심오한 꿈을 위해 때와 기한을 두고 기도의 모습을 가진 다니엘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니엘의 모습은 응답하기도 전에 하나님을 선포한 모습은 뜨인돌의 해석으로 나타난 왕의 근심이 단번에 풀어져 가는 역사로 다니엘의 하나님께 경배를…
    경안교회
    2018-12-05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선회하는 것과 우회하는 경우가 있음을 보게 된다. 선회하는 것은 그 주위를 뱅글뱅글 맴 도는 일이다. 소위 말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선회하는 일이 종종 빗발치게 된다. 왜냐하면, 뚜렷한 목적의 상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우회하는 것은 곧장 가지 아니하고 멀찍이 돌아가는 현상이다. 믿음의 사람인 아브라함은 그가 익숙했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곳에 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무지막지한 인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교감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는 인생은 선회하거나 또는 우회하는 경우를 범하지 않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서도 이러한 일은 고스란히 일어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청종하는 그 때에는 약속한 땅에 이르도록 순적한 인도하심을 받게 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듣지 않고 불순종으로 이어지는 날에는 그들에게 우회하는 일을 겪게 된다. …
    경안교회
    2018-12-04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열망을 꿈꾸고 살아가야 하는 주체는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든든히 서가는 것이어야 말로 진정 열망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열망하다의 뜻을 단어적인 풀이로 보자면, 열렬히 바라는 일이다. 오늘도 우리는 세상 밖에 나가  열렬히 바라는 현장 속에 들어가게 된다. 가정을 지키는 사람으로 직장에서 성실히 맡겨진 일을 하는 사람으로 그리고 많은 이들을 생명의 길 가운데에 인도함을 제시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장 바라고 원하시는 그 자리는 바로 예배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이 올해 우리 제단에 주신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을 세상에 전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우리가 속한 가정과 직장과 일터 그리고 각 가지의 사람들과 만나는 공동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그 사랑으로 열망하며 살아내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전하는…
    경안교회
    2018-12-02
    회복은 사랑이다. 제자들에게 ‘내가 잡히리라’는 음성을 들었을 때 그들의 맹세는 인간적이었다. 깨어 기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졸게 되었을 때 그들에게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에 제자들은 흩어지고 베드로 조차 3번씩 저주의 맹세를 하게 된다. 예수님의 부활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한 증거가 있음에도 그들에게 불신과 의심 그리고 두려움은 여전히 있었다. 오히려 믿지 못한 제자들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시다. 왜 이러한 마음이 생기는가?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부어주시는 그 사랑은 ‘처음 사랑’ 그대로였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떠난 제자들은 자신의 일상 가운데로 돌아서게 되고 생업에 매진하게 된다. 그러나 보란 듯이 빈번히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 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나타나시고 말씀을 명하셨을 때 그대로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게 되었는데 찢어질 만큼의 고기(153마리)를 낚게 된다.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향해 ‘사랑하느냐’라는 3번씩의 반문을…
    경안교회
    2018-12-02
    인생과 신앙의 계절에도 겨울이 찾아오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제 3의 법칙에서 알 수 있듯이 3명이상이 모여서 어느 곳을 주목하며 지나가던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듯이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3명 이상을 통해 예비하는 삶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성된 합일체처럼 말이다. 하나님의 뜻은 온전하게 그리고 기뻐함으로 선하신 일이 되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완성이 되며 구원 받는 수가 증가되는 일(롬12:1-2)이 될 수 있다. 오늘 본문의 제목처럼 ‘살려라’ 인생의 겨울이 찾아오는 절망의 때가 에스겔에게도 있었다. 바벨론 3차 침공(BC586)으로 남유다의 성전 뿐 아니라 왕까지 박살이 나고 노예로 잡혀간 때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겔에게 찾아오신다. 왜?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마른뼈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소생불가능의 이 때 당시의 상황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기 …
    경안교회
    2018-11-30
    혈과 육이 아닌 공중권세 잡은 사단에 대한 영적인 전투여야 한다. 사단은 인간 관계 속에서 계략을 꾸며 교회든지 직장이든지 가정이든지 드러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해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망치는 존재는 첫째는 사단의 시험이며 둘째는 자기 자신이다. 본문 15절에 등장하는 기드온처럼 겸손이 없는 열등감과 산속의 굴 속에 잠입한 두려움, 원망, 분노로 이어지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기드온의 이야기는 세상 속의 우리들의 모습인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나타나 기드온을 주목했을 때 그는 포도즙 틀에서 밀을 소리엇이 타작하고 있는 극소심한 사람이었다. 청년 기드온의 삶을 조명해 보면 과연 제대로 사는 인생인가? 점점 사라지는 기드온의 겨울은 비참한 인생이었다. 그의 배경이 그러했다. 하필이면 미디안의 위협 속에 살아가는 이스라엘을 원망했고 12지파 중의 므낫세였다. 므낫세 지파는 요셉의 두아들 중 하나이며 아곱의 손자들로서 그의 형제 에브라임과 함께 축…
    경안교회
    2018-11-29
    ‘나’라는 존재는 수 많은 환경들이 거쳐가면서 때로는 상처가 세월이 될 모습 속에 살아가지만 그 속에 희생, 헌신 그리고 성숙되기도 한다. 모세가 살아남고 강하게 되기 까지의 여정도 그러했다. 당시, 바로 왕의 권한에 반한 어려운 시절에 아므람과 요게벳은 용단을 가지고 모세를 갈대상자에 담아 갈대 숲으로 떠나 보내게 된다. 미리암이 염탐을 하면서 결국 바로의 공주의 품을 통해서 젖먹이를 자청하여 요게벳에 젖먹이를 연결한 치밀한 일 후에 애굽에서 장성한 그는 첫 인생 40년에 애굽의 학문과 각종 지식을 습득하지만 자기의 뜻대로 행동함으로 결국 민족성을 자신의 뜻으로 보란 듯이 살인 전과로 낙인찍혀 실패하여 미디안 광야로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어느덧 80세가 된 모세 인생에 겨울이 찾아오게 되었다. 그는 비루하고 비참하며 연약해져 있는 상태였다. 삶의 회의를 느끼며 이전의 장성했던 첫 40년의 인생은 온데간데 없게 되었다. 소망도 의미도 상실되어 영…
    경안교회
    2018-11-28
    이름의 신비는 바로 축복과 그의 삶을 살아가는 됨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 되는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인디언들의 삶에는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지었다. 자주 반복해서 불러주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의 의미는 뒷꿈치를 드는 자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은 몰래가서 넘어뜨리는 것 사기꾼의 기질을 가진 악착같이 사는 인생의미가 삶에서 나타난다. 어미 리브가의 태중에서 에서와 더불어 쌍태를 품었을 때 부터 에서의 뒷꿈치를 잡고 태어났다. 야곱은 항상 에서의 삶을 들여다보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에서는 들의 사람으로 사냥 후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는 것과 야곱은 에서가 가장 좋아하는 팥죽으로 흥정하기를 기다렸던 약삭 빠른 인물이다. 에서의 성미는 급했다. 그래서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장자권을 놓고 ‘내가 죽게 된 마당에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냐?’ 성격대로 그에게 나타난 성급한 판단은 야곱에게 참패를 당하고 폐가망신의 위기까지 겪게 되었다…
    경안교회
    2018-11-28
    세상에서 우리에게 들리는 소리는 부정적이다. 성경에서는 공중권세와 거짓의 아비인 사단이 붙잡고 있기에 그들은 도적질과 멸망시키고 죽이려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소리를 분별해야 한다. 오늘 본문은 아브람이 75세에 다가오는 인생의 겨울을 소개한다. 그는 세상적으로 보아도 무자식, 사라의 경수가 끝난 낙이 없는 세상의 부정적인 상황에 갇혀 있다. 그러나 아브람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긍정적인 축복을 말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사랑과 축복으로 큰 민족을 그리고 창대하게 다가오심을 선포한다. 우리의 삶에서도 어떤 선택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어떠한 선택을 하든 우리의 몫을 예비해 주신다. 아브람은 그것을 붙잡았다. 순종이다. 아브람의 특징은 가는 곳 마다 ‘단’을 쌓았다는 것이다. 오늘날로 적용해보자면, 기도의 시간이다.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은 십자가를 통한 자신의 확증이다. 세상 밖에서 멀고 가까우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경안교회
    2018-11-28
    계절의 겨울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겨울의 의미는 인생의 겨울을 말한다. 겨울이 오면 한해를 마감하듯이 인생에도 죽음이 찾아온다. 그리스도의 겨울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는 그 날에 무슨 준비를 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준비가 된 사람은 칭찬과 상급이 따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응징의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유언이 담긴 내용이다. 예수님 강실 하실 그 앞에 ‘너는 말씀을 선포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일로 인해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는 그 고백이 담겨있다. 바울에게 임종이 가까웠다는 것은 처형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어서오라”라는 2번씩의 강조를 보면서 겨울이 오기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첫째, 사람을 준비해야 한다. 오네시모는 떠났고 남은자는 누가였고 부르고 싶은 이가 그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가를 요청한다. 왜 그렇게 요청하는가? 사랑이기 때문이다. 결국에 남는 일은 가장…
    경안교회
    2018-11-27
    자유의 성경이 바로 갈라디아서이다. 마지막의 결론은 삽자가만 자랑하는 것이다. 이전의 삶은 육체의 모습으로 가진 자의 자랑에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유대의 전통에 메인 유대인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정치적인 집단으로 육체의 강함을 포기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성경에서도 교훈하는 인물이 골리앗은 월등한 신장과 전쟁의 경험을 앞세워 하나님을 조롱했지만 다윗의 물맷돌 하나에 수치를 당하는 죽음을 맞이하였다. 애굽의 바로 역시도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모든 것들을 타파하는 대적하는 삶을 살았지만 모세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명하신 해방의 선포로 좇아왔던 수많은 군사들은 홍해에 수장되었다. 갈라디아서에서 계속적으로 이와 같은 행실을 한 이들이 있었으니 율법의 행위만 빙자한 거짓 교사들이다. 구약의 율법을 강조했던 유대 전통에 얽매인 이들은 예수님으로 인해 구원 받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다. 마치 자기 자랑으로 인해 대적하는 삶이다. 육체의 표적(할례)를 강요했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
    경안교회
    2018-11-23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은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 사49:21 ‘이 백성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영광을 받으시는 목적이며 그로 인해 주어지는 권능의 역사가 모든 삶에서 인도해 주시는 이유가 되신다. 바꾸어 말하면 권능의 궁창에서 자유케 하신 일의 역사였다. 약속하신 그 땅에서 뱀의 형상으로 찾아온 사단의 꾀임으로 아담은 자신의 수치를 알게 되었고 그것을 무화과 잎으로 엮어 숨었다. 권능의 궁창에서 시인은 찬양한다라고 선포하지만 하나님께 향한 대적은 권능의 궁창이 아닌 자신의 동굴 속에 파묻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전리품이 눈에 멀어 하나님께서 택하신 여호수아를 속이고 하나님을 속인 아간의 일은 그로 인해 아이성의 문이 열려지지 않았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안목의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 하나님을 속여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늘날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한다…
    경안교회
    2018-11-22
    모임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은 기쁨이고 행복의 조건이다. 하나님께서도 명하셨다. 히10:24-25에서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주신 그 기쁨은 나누는 것이고 함께 하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각기 저마다 자신들의 속해 있는 환경들 속에서 그 모임을 주관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모임에 참여함으로 기뻐하는 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오늘도 이 새벽의 제단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 기뻐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오늘 본문 149편은 하나님을 할렐루야로 계속 찬양하는 그 시에서 하나님의 택하신 그 은혜로 구속받은 백성들이 찬양하는 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택함 받아 그 여정을 그린 대표적인 사건은 아시다시피 광야의 여정에서 만난 하나님이다. 우리가 잘 아는 창15장의 홍해를 통해 구원의 문을 열어주신 그 사건에 찬양하는 시는 애굽이라는 세상의 거친 문화에 대해서 하나님…
    경안교회
    2018-11-21
    고린도전서 12장은 은사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신체의 부위로 설명해 보면 눈, 귀, 코, 입 각 기관들이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못하면 제 기능을 할 수 없듯이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책임과 사랑이 뒷받침 되지 못하면 끝나는 인생이 된다. 각자의 책임은 자신이 살펴야 한다. 오늘 본문 5절에서 말하는 바가 각자 스스로에게 살펴야 할 일들을 말해주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장기가 소중하듯 교회에서 각자 맡은 은사에 충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천국비유로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성도들의 책임은 예배의 의무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말씀을 골고루 듣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들의 은사는 각기 다른 은사로 직분과 할 일들을 생각해야 한다. 각기의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먼저는 본문 2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힘써 감당해야 한다. 서로 돕는 것이다. 사랑의 협력이다. 사도행전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이들은 통용하는 문화가 있었다. 그들은 물건 뿐 만 아니라 협력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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